팽성 대회전(彭城大會戰) 또는 팽성 전투(彭城之戰)는 초한전 기원전 203년 당시 유방과 항우가 초나라 팽성에서 벌인 대규모 회전으로 항우가 유방의 60만 명의 군사를 거의 전멸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항우vs유방의 팽성대전 (실제 역사기록입니다.)
제나라에서 삽질하고 있는 항우를 엿맥이고 관중을 장악한 한왕 유방이 얻게된 군사들은 무려 56만명에 달하며 은왕 사마앙,하남왕 신양,상산왕 장이를 비롯하여 위왕 표 등 많은 지역의 왕들이 그에게 들어온다. 초나라의 수도인 팽성은 항우의 발판이며 초나라의 심장이나 다름없는곳이었다.
유방은 56만여명을 얻게되자 오만해졌다. 곧바로 팽성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이때 파초대원수 한신이 유방에게 아룄다.
"우리는 56만의 병사들을 가지고있으나 대부분 항복해온 자들이라 기강이 서지않고 군열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며 우리들의 군대는 사실상 15만이니 항우의 군대를 우습게 볼수없어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라고 아룄으나 오만해진 한왕 유방은 쓸데없는 호기를 부렸다.
"그럼 대원수는 어느때가 적합한 시기라 생각하는가?"
어짜피 유방은 이말의 대답을 듣는다해도 그것을 들을 상황이아니었다. 한신은 다시
"지금 초패왕 항우는 제나라와 연나라를 공격하고있으니 그의 허점이 보일때에 나서
공격하여야 큰 뜻을 이룰수있을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한왕 유방의 오만함은 그누구도 말릴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며,지금 우리의 병사들이 56만이니 사기또한 하늘을 찌를듯하다.
지금이야 말로 초패왕 항우를 꺾을 시기이니 그대가 정 두렵다면 관중으로 돌아가 있으라."
파초대원수 한신이 허탈해하며 수락하고 자신은 관중을 지키기로 하였다. 이것은 곁에있던 장량이 보더라도 한왕의 만용이 틀림없는것이었다. 팽성을 지키던 팽월은 평소 항우에대해 불만을 품고있던자였고 한왕을 흠모하던 자였다. 그리하여 손쉽게 팽성을 유방에게 바치게된다.
유방이 무혈입성하여 아무런 피해없이 팽성을 얻게되자 그의 오만심은 더욱더 높아져갔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패왕의 부인 우미희가 우자기와 함께 팽성을 가까스로 탈출하였다. 제나라를 공격하던 항우가 우미인과 우자기를 보자 격분한다.
항우의 격노는 겉잡을수없이 커지고 용저와 종리매에게 제나라를 맡긴채 자신은 오직 3만 5천명을 이끌고 빠른속도로 팽성을 향해 곧장 휘몰아쳐간다.
한왕은 항우가 힘만센 어린아이로 보일뿐이었다. 56만대 3만5천은 상대가 안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파초대원수 한신이 관중으로 돌아가자 새로운 대원수를 택해야 하였다. 유방은 일방적으로 말만 번지르르한 위표를 대원수로 삼고 56만을 모두 동원하였다. 대원수가된 위왕 표는 초패왕 항우에 맞써 한왕의 부대를 5부대로 나누어서 재편하였다.
선발대는 은왕 사마앙,2대는 하남왕 신양,3대는 하후영,왕릉,4대는 한왕,5대는 자신이 이끌기로했다.
패왕 항우가 홀로 무서운 기세로 돌진하였다. 이에 3만 5천명도 그에 뒤를 따랐다.
단 1합만에 은왕 사마앙이 항우에의해 참살당하고 2합만에 하남왕 신양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항우의 기세를 당해내지 못하고 선발대가 무너지더니 2대역시 빠른속도로 무너졌다.
1대와 2대가 전멸하고 3대와 4대가 순식간에 밀리더니 이내 항우에게 모두 뚫리고 말았다.
위표가 항우에게 눌려 당황하고있는 찰나에 항우에 의해서 부상당하고 말았다. 유방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재빨리 도망쳤으나 항우가 이것을 발견하고 무서운속도로 쫓아갔다.
번쾌가 항우를 막으려 들었으나 항우의 기세는 더이상 그누구도 겉잡을수없는것이었다. 결국 번쾌가 패퇴하고 뒤로 쳐진다. 항우는 유방을 다 따라잡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돌풍이불어,항우가 쫓아갈수없게됬다. 유방은 겨우 목숨만 건진채로 돌아갔으나
한의 병사들 상태는 그런것이 아니었다.
56만중 40만명이 전멸하고 10만여명의 병사들이 강을 건너 도망치려다 죽었다. 이날 한의 장수 60명이 항우에게 참살당했다.
56만vs3만5천 수십배의 군세를 전략도 아니고 닥돌 무력으로 쳐발라버린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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